우수빈은 사라진 존재들의 흔적에 집중해 이를 조각과 회화의 물성으로 옮겨온다. 사라진 것을 통해 삶과 죽음의 역사를 좇고 생명이 경유한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고자 하는 그는, 생명의 자취로부터 과거의 전쟁과 폭력, 외·내상의 미시사를 추적한다. 작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대상에는 수많은 흔적이 스며 있고, 그 흔적에는 이를 마주한 사람을 끌어당기거나 만지도록 만드는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다. 표면을 만들고 쓰다듬는 행위는 상처를 봉합하는 것과도 같다. 지나가 버린 과거의 풍경은 작가의 손을 통해 새로운 물성으로 조립되고 중첩되며,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하나의 선상 위에 엮어낸다.
〈당신의 첫번째 말〉(2024)은 말이라는 생명체에 아프리카 원주민의 서사를 투영한 작업이다. 명예로운 전투를 기원하면서도 동시에 죽음을 희망했던 이들은 이승에서 저승으로의 혼을 인도하는 존재로 상정된다. 단지 숭고한 죽음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죽음과 맞닥뜨린 순간 다시 삶의 목적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경유하는 것이다.